이황은 1502년 1월 3일(1501년 음력 11월 25일) ~ 1571년 1월 3일(1570년 음력 12월 8일))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 교육자, 시인이다.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퇴도(退陶), 도수(陶叟)이다. 영남학파의 창시자인 대학자 이언적의 주리론의 영향을 받고 이를 계승하여 집대성시킴으로써 한국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로 꼽힌다.
이언적으로부터 계승된 그의 사상은 그의 직제자 김효원(金孝元)이 동인의 당수가 된 이후 동인으로 전달되었으며, 남인으로 이어졌고, 북인 일부에게도 계승된다. 소고 박승임, 서애 류성룡 등의 문하생을 배출했는데, 후일 동인이 분당된 뒤 박승임의 제자는 남인 일부와 북인 일부로, 류성룡과 그의 후예들은 남인으로 이어진다. 임진왜란 당시 그의 저서들이 일본군에게 약탈당했는데, 이때 약탈된 이황의 저서와 작품, 서한, 편지 등은 일본유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